1. 일단 이런 무개념을 봤나.. 라는 쪽에선 '죄'라는 표현을 굉장히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일상적인 어법에서 '죄'가 그렇게 무거운 건가.. 생각해보면… 때론 무겁기도 하고, 때론 가볍기(?)도 한 것 같다. “뚱뚱한 건 죄다”라는 6음절의 문장은 거기에서 '표정'과 '뉘앙스'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맥이 중요할 수도 있겠는데… 물론 이건 굉장히 개념없는 발언에 속한다. 그러니까 이건 논리 이전에, 그러니 논리를 따지는 논쟁이 성립하기 어려운 지경인 '무개념'일 '확률'이 꽤 높다.
2008/02/15
2. 그렇다고 “이건 가식적인 인간들을 봤나”라는 쪽의 '솔직함'(?)에 공감되지 않는 바 아니다. 이쁜 여자, 멋진 남자… 다 좋아하잖아? 이게 '플러스 알파'가 아니라, 어떤 인간적인 관계, 특히나 이성관계에서는 '그 출발점'에 가까운 '몸'이 그 자체로 출발점이자 그 종착역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몸은 이미 상품이고, 실존이며, 또 그 몸으로부터 그 모든 고통과 기쁨과 희망과 쾌락과 소망이 피어난다. 이건 부정할 수 없겠다. (써놓고 보니 헛소리다. 이 사안과는 다소 먼 발언들이구나.. ㅡㅡ;; )
2008/02/15
3. 솔직히 “뚱뚱한 건 죄야”라고 말하는 게 “파시스트의 커밍아웃(도롱뇽님. 도롱뇽님 글을 통해서 뚱뚱논쟁에 접근)”이거나, “폐륜”(도롱뇽)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좀 위험하고 극단적인 사고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없지 않다. 1.에서 썼듯이 그 '말' 자체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 '말'이 유통되는 서로에게 작용하는 '상황'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시츄에이숑을 생각해보자. 자신이 굉장히 사랑하는 어떤 여자/혹은 남자가 비만 때문에 갔다고(좀 극단적인 가정이긴 하지만) 해보자. 남겨진 남자/혹은 여자는 너무도 서럽고, 너무도 가슴이 아프기 때문에 “뚱뚱한 건 죄야” 이럴 수도 있지 않나? (너무 비약인가?)
2008/02/15
4. 난 개인적으로 뚱뚱하든 말랐든… 이쁜 여자가 좋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미학적인 관점에서 획일성의 강요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시선들은 그게 사회의 야만성을 증거하는 가장 강력한 표준이라고 개인적으론 생각한다. 왜 뚱뚱하면 안되나? 왜 뚱뚱하면 이쁠 수 없다고 생각하나? 상상력의 빈곤이다. 우리는 이쁜 걸 탐하고, 아름다움은 가장 매혹적이며, 우리는 그 매력을 거절하지 못한다. 다만… 뚱뚱하다와 아름답다가 서로 반대말은 아니잖나? 물론 되도 않는 '아름다움이란 건 말야, 마음 속에 있는거야'라는 말 씨부릴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뚱뚱'이 아름다움과 전혀 상관이 없다거나, 혹은 어떤 예외적인 감수성에서, 어떤 예외적인 상황 속에서가 아니라면…
2008/02/15
4-1. 뚱뚱한 건 죄야. 이렇게 말하는 '솔직함'은 그게 칭찬받기 어려울테다. 솔직한 것과 야만스러운 것은 다르고, 원시의 야생적 사고는 그게 야만적이기 때문에 문명의 반대말이 아니라, 문명이 획일적인 야만의 시선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야만적이다(레비스트로스..의 취지가 이런 것 같다). 뚱뚱이 죄다..라고 말하는 시선과 미학적인 관점은 야만성, 자본주의 문명의 빛나는 타락과 닿아 있다. 그건 욕망을 위해 살인과 도둑질을 방조하는 야만성이다. 그 욕망의 뿌리에는 그 도저한, 배타적인 지배욕과 순응적인 자기 기만이 숨겨져 있는 거디었던 거디닷. (이건 내가 써놓고도 뭘 썼는지 모르겠다). ㅎㅎ
2008/02/15
4-2. 그러니까 위 문명과 야만의 이분적 사고방식에 대해 좀더 쓰면… 야생의 사고가 갖는 '법칙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구조들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피상적이며, 문화적인, 그래서 역사적인 일시성을 갖을 뿐인 피상적 표준들로 야생을 야만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행위, 그 모든 문명의 행위가 오히려 야만이다. “뚱뚱이 죄다”도 '확률'적으로 이 범주에 속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겠다.
2008/02/15